天眞菴聖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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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若鏞의 風景詩, 天眞菴 賞楓과 天眞菴丹楓觀賞!
丁若鏞선생의 苕川 風景詩, 天眞菴 賞楓과 [天眞菴丹楓觀賞祭週間]에 단풍 시인들과 문학도들에게 알립니다.

10월 중순부터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천진암 성지의 단풍은 황홀하지만 혼란하지 않고, 은은하고도 흐믓하며, 소박하고 진솔하며, 순수하고 포근한 情趣를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정약용 선생도,“천진암의 단풍은 賞을 주어야 할 일품”이라고, 초천사시사(苕川四時詞)에서,”天眞菴 賞楓“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정약용 선생은 자신의 母校와도 같은 천진암을, 10 여세 전,어려서부터 20 여세의 청년시절 까지 자주 와서 머물며, 이벽 성조한테서 천문학, 지리학,수학,기하원본,천주교,등을 배웠으며,그 후 30대의 조정 重臣 현직에 있을 때도, 또 65세의 노년기에도 옛 벗들과 함께 천진암을 방문하여 며칠씩 머물면서 많은 詩文을 남겼읍니다(天眞菴, 石徑細如線, 昔我童時游, 豪士昔講讀,丁氏李氏賢友賢士勉學, 天文, 地理, 醫學, 曆學, 數學, 幾何原本,新敎之說, 等, 奇學多博, 道友衆徒如叢林, 聖敎要旨下筆).

늙으막에 마지막으로 와서는 마치 신세한탄처럼, 자신은 아직도 괴로운 바다에 떠 있는 한 조각 배와 같은 신세로서,천진암에 다시 와서 아주 살고싶으나,늙은 자신에게 다시 올 수 있는 방도와, 와서 머물 수 있게 편의를 제공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구나! 하고 탄식할 정도였읍니다.(猶然苦海一孤舟, 我欲來此住, 無人示方便).이처럼 천진암은 정약용 선생이 가장 사랑하던 마음의 고향이며 母校였읍니다.

그리하여, 매년 10월 마지막 주간(금년은 10월 23일 주일부터 30일 주일까지), 1주일 동안을, 천진암 성지에서는, [天眞菴丹楓觀賞祭] 주간으로 정하였습니다. 경기도의 유일한 廣州山脈으로 둘러쌓인 鶯子山의 天眞菴은 廣州八景 중 第三景으로 이미 廣州市에서 지정하였는데, 매년 10월 하순에는 사방의 단풍 경치에 파묻히게 되는데, 西海로부터 습기를 품은 바람이 여름내 漢江을 따라 불다가 廣州山脈에 부딫쳐서, 산맥의 西北 쪽을 향해 있는 천진암 계곡에는 매우 습하여서 그런지 나무가 잘 자라고, 단풍잎이 바위 악산의 단풍잎보다 좀 더 두툼하고 싱그럽게 보입니다.

이 주간에 천진암 성지에서는 매일 낮 12시 대성당 터에서 앵자산 단풍을 바라보며, 단풍경치에 파묻혀서 가급적 야외미사를 봉헌합니다. 12시 미사 후에는 각자 마련해온 점심을 하면서, 대성당 터를 감싸고 있는 앵자산 단풍을 감상합니다.

특히 丁若鏞 선생이 돌아가신 후, 아들 丁學淵은 벗들을 天眞菴으로 초청하는 그의 서찰에서, 鶯子山을 天眞山이라고 부르고 있으니(天眞山 寺之遊), 己亥年 박해가 지난 후, 1850년대를 전후하여 당시 천주교회 지도층 신도들 사이에서는 천진암 때문에 앵자산을 그렇게도 불렀던 것 같습니다.

한민족100년계획 천진암대성당 자리에서 바라보는 사방 둘레의 天眞山 자락들은 보고 즐기기에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으며, 너무 높지도 않고, 너무 낮지도 않으며, 산능선은 마치 중동의 시나이산 같지만, 그처럼 살벌한 바위 악산도 아니며, 부드럽고 품위가 넘치는 선비들의 도포자락 같은 신령한 名山입니다. 앵자산, 즉, 일부 후대인들이 부르던 일명 天眞山은 정약용 선생 아들 대의 천주교 선비들이 부르던 이름이니, 山과 詩와 단풍을 사랑하고 즐기는 분들은 이 주간에, 天眞山 丹楓 속에 자리한, 한민족100년계획 천진암대성당 건립 현장으로 각자 자유로히 모여서, 丁若鏞 선생의 [초천사시사(苕川四時詞效張南湖賞心樂事)]를 다시 한번 읊어보며, [天眞菴丹楓觀賞祭]에 시간을 내고, 자리를 함께합시다.

그 옛날의 요한 정약용 선생(1762~1836)에게처럼, 天眞山의 단풍은 오늘도 如前히 우리를 반기며 감복시켜주고 있습니다. 천진암 단풍을 보고 즐기며, 이 ”거룩한 아름다움“의 天眞山이 주는 한 가을의 단풍을 觀賞하며 노래합시다.

丁若鏞선생은 1786년 丙午년 25세 때, 고향 마재 주변의 名山과 名所의 風景에 대한 名詩를 지어, [초천사시사효장남호상심요사(苕川四時詞效張南湖賞心樂事]를 우리에게 남겨주었습니다. 그 중 몇마디만 뽑아 소개합니다.

검단산에 피는 꽃은 아름다워 賞을 주어야 하네 !(黔丹山賞花)
쪽풀섬의 파란 풀밭을 밟으며 걷노라면 넋을 잃게 되지 ! (藍子洲踏靑)
한 여름 석호정에 앉으면 그 시원함이 비할데없고 ! (石湖亭納凉)
천진암의 황홀한 단풍은 상(賞)을 주어야 할 일품이지 ! (天眞菴賞楓)
한 겨울 눈에 덮힌 수종산의 雪景도 상(賞)을 주어야 하리라! (水鍾山賞雪,)
두미협에서 앞강의 물고기 노니는 모습 보면 정신이 빠지네! (斗尾峽觀魚),,,.

<지명 주해:검단산은 마재 앞강 건너 서쪽 두미 뒷산이고, 남자주는 마재 위의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쳐 흐르는 양수리 아래 강 가운데 생긴 작은 섬이며, 석호정은 마재 앞강 건너 검단산의 동남쪽에 있는 정자이며, 수종산은 마재에서 청평으로 가는 좌측 높은 산으로 上峰 바로 아래 水鍾寺가 있으며, 두미는 마재와 마주보는 강건너 마을로서 이벽 성조의 별장이 있던 마을이다. 그 마을 어구에는 두미나루터가 있었고, 정약용 선생은 두미 나루터와 그 앞강에 와서, 특히, 老年期에 많은 詩를 읊었다.>

다음은 추가로 박학한 正祖 임금도 감탄케 하였던, 젊은 정약용 선생의 詩文 才質을 소개합니다(宋載邵 著, 茶山詩硏究 參考). 丁若鏞선생은 1786년 丙午년 25세 때, 正祖 임금 앞에서, 別試의 初試에 합격하고(2월4일), 到記의 初試에도 합격하고(8월6일), 이어서 가을을 맞아 열린 到記에서도 또 합격하였는데, 그 후 王宮 春塘臺에서 정약용보다 10세 年上의 임금 正祖는 정약용을 보고, 그의 詩를 評하며 말하기를, \"네가 지은 詩文은 지난 肅宗 임금 때 여러 사람들이 지은 문체의 수준과 같구나. 근래의 俗된 문체에 물들지 않았으니, 아주 드물게 보는 문장으로 매우 貴하게 여길만 하다. 다만 아직 좀 젊으니, 結實을 거두는 것이 늦어질까 염려된다. 혹시라도 점차 世俗의 문체를 따라 물들지 않도록 하거라. 다른 이들의 이질적인(異類) 문장들을 본받아서는 안된다”라고 하였다. Msgr. Byon

Writer : 천진암   Date : 2012-03-02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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