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선조들이 외쳐 불렀던 天主님!
2016천진암성지주임 김학렬 신부
天主 이름의 채택과정을 살펴보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되는 주님의 기도에서와 같이, ‘하늘의 주님’이라는 뜻의 天主라는 호칭은 천주교 신자들의 하느님 Deus의 漢字化 된 이름이다. 네스토리우스 파의 경교가 처음으로 중국에 들어왔을 때는, 天尊과 世尊이라는 이름으로 하느님을 표현하여, 불교적인 색채가 농후하였다. 이후 중국에 입국한 예수회의 마태오 리치Matteo Ricci와 루지에리Ruggieri 신부가 1583년 7-8월에 肇慶의 天寧寺에 머물고 있을 당시, 중국인 예비자 Ccen陣(1584. 10. 21.에 요한으로 세례)이란 청년의 집을 방문하였을 때, 그 청년이 자기 집 제단 벽에 天主라고 크게 써 붙인 것을 보고, 그 해 9월부터 선교사들이 이를 받아들여 처음 사용하기 시작하였다(cf. Fonti Ricciane = FR N.246, 558, 2579). 책에서 처음으로 천주란 용어를 사용한 것은 1584. 8. 18.에 발간한 루지에리 신부의 <천주성교실록>이다. 이후 [성경직해] 제 1 권에서도 天主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천주는 서양의 원어로는 陡斯두사라고 하며 천지만물의 주인이시다. 天主 西士原文曰 陡斯 乃天地萬物之主’ (민기, <한국교회사논문II>, p. 620에서, 북경 관어의 발음으로는 天主teou seu로서, 라틴어의 Deus(提宇子)는 그리스어 Theos의 음역이라고 하였다; 임마누엘 주니올 디아스(Emmanuel Junior Dias, 陽瑪諾 1574-1659)신부가 지은 성경직해 제 1권 서두에는, 天主耶穌契利斯督을 풀이하고 있는데, 제 10권에서 契利斯督계리사독이 基利斯督기리사독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두 선교사들은 처음에 다음과 같은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천주라는 용어를 채택하게 되었다. 원래 불교에서는 Deva들의 주님, 즉 Indra의 칭호로 天主라는 이름을 사용하였고, 도교에서도 이 天主란 이름으로 신을 공경하고 있다는 사실을 선교사들이 1583년에는 몰랐던 것이다. 불교가 중국에 들어오기 전에도, 중국에서 천주라는 신을 공경하고 있었고, 천주는 八神들 가운데 하나였다. 즉 고대 중국에서는 八神으로, 하늘의 신 천주와, 땅의 신과 전쟁의 신, 여성陰의 신과 남성陽의 신, 달의 신과 태양의 신, 그리고 四方의 신이 있었던 것이다. 219 a.C.에 중국 秦의 始皇帝는 이들 신들에게 제사를 드렸다(八神, 一曰天主, 祠天祭.; 사마천의 史記에서, 8신들을 적어도 12세기 a.C.부터 공경하여 왔다고 한다.; 김정희, 완당전집 제4권 , 서독(書牘), 其六 참조). 이렇듯 천주의 이름이 불교와 이교도들의 신들로부터 비롯되었음을, 나중에 리치 신부가 인지하고 나서 변경하려고 하였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으니, 천주의 이름이 널리 유포되어 있어서, 다른 이름을 도입하면 혼란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리치는 [천주실의]에서 上帝와 天上帝, 天主上帝 대신에 天主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上帝의 칭호는 리치 신부가 유교에서 가져와 사용면서, 유교의 上帝가 곧 天主임을 밝히게 되었다. 天主聖母에 대한 칭호도 ‘天主聖母娘娘’이라 불렀으나, 마지막 娘娘이란 표현이 이교적이라 하여 일찍 폐기되고, 오늘까지도 천주성모로 부르고 있다. 1704년 11월 20일에 반포된 교황 Clemens XI의 훈령에 따라, 上帝나 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고, 天主의 이름을 사용하도록 하여, 오늘까지도 중국뿐만 아니라 극동지역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하느님을 부르는 이름이 되었다. (FR N.236-각주1). 이렇게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天主란 칭호를 중국으로부터 그대로 받아들였다. 일본에 처음 도착한 성 프란치스코 하비엘 시대에는, 먼저 大日로 부르다가, 다음에는 大道라 하였고, 나중에는 라틴어Deus를 그대로 표기하여 사용하였다(ARSI, Jap.-Sin., 105a). 일본에서 天主의 발음은 Tonxu, Tonsciu 이다. 천주의 이름이 유럽에 알려지는 해는 1585년경으로서, 이태리 Modena에서 발행된, 'Breve Raguaglio dell'isola del Giappone'에 들어있다(FR 236).
개신교 최초의 성경인 <모리슨역>의 하느님 호칭을 보면, 파리외방선교회 신부의 <바쎄역>본을 따랐으므로 主와 神을 사용하고 있다. <모리슨역>은 대체적으로 하느님을 神으로 옮겼다. 마태 5, 9에 나오는 神之子輩는 하느님의 아들들(자녀들)이라는 뜻으로, 그냥 神之子로 번역한 파리외방선교회 신부의 <바쎄역>과 달리 복수로 옮겼다. 그리스어 테오스를 神으로 옮긴 것이 특이하다. 上帝나 天으로 옮기지 않고 神으로 번역한 것은 나중에 <대표역>에서 영국계 선교사들이 上帝를 고집하여 <상제판>이 따로 나온 것과 대조적이다. 미국계 선교사들은 神이라는 용어를 선호했다(Latourette 1929: 140; 이환진, 19세기와 20세기의 중국어 성서, 2000년 9월, p. 9-10).
황사영 백서에서는 주로 主와 天主(66행)의 칭호를 사용하나, 때로는 上主(4행의 上主赤子)의 칭호도 사용하고 있다. 徐光啓 撰의 闢妄벽망(闢釋氏諸妄 1권, 1903 상해 자모당활판; 闢妄 2권, 1904 香港 納匝肋靜院)에서는, 大主와 함께 上主의 표현이 많다. 벽망의 한글 번역본에서는 이 모두를 텬쥬로 번역하였다 (서광계, 벽망 2권, p. 11; 白日昇神父, 開拓四川敎會之先驅, 書信集과 中國福傳建議書, 2012 Edition You Feng, p. 140. 각주 412). 耶穌會士 陸安德 述, 善生福終正路, 1794 主敎 亞立山(Alexander Gouvea) 湯 准의 글에서(P. 22)는 費畧(Filius) 耶穌 契利斯督과 함께 天主聖子, 吾主란 표현도 사용하고 있다. 1879년에 광서주교의 인준을 받은 [신록고려주증]에서도, 천주와 상주를 쓰고 있다. 조선교우들의 편지에서도, 상주와 천주의 표현이 등장하는데, ‘상주님과 성교회의 은총으로 대인(갑사의 주교)께서는 조선의 양들을 보살피고 칠 책임을 지셨습니다. 罪人巴斯弟央(남이관)等白 上主及聖敎會伏惟大老爺 領牧東羊’(1834년 말편지; 달레 중 p. 295). 上主의 칭호는 정약용(?)이 [만천유고]의 발문에서 사용하고 있고, <성교요지>의 주에서도 사용하고 있는 용어이다. 정하상(?) 성인이 가져다주었을 <마과회통의 부록으로 실린 신증종두기법상실, 1828 북경판>처럼, 미사경본과 성서와 다른 성물들(其外經本書本及聖物, 1835.1.18. 북경남당에서 유진길 등의 편지, 달레중 308)과 함께 魏源의 <天主敎考, 1830>도 정약용이 참조하였을 것이다. 상주(上帝 + 天主)의 칭호는 천주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않기 위한 佊諱피휘의 뜻이 들어있을 뿐만 아니라, 천주교 신자로서 박해를 피하기 위한 의도도 포함되었다고 본다.
마태오 리치 신부의 선종(1610)이후, 1618년에 로마를 방문한 Nicolas Trigault(金子, 四表, 金尼閣, 1577-1628)의 보고를 받고, 선교 가능성을 확인한 바오로 5세 교황은 중국에서 미사 봉헌과 성사의 집전, 그리고 성무일도까지도 중국어로 바칠 수 있도록 허락하였었다. 그는 선교사들 20 여명과 함께 7천여부의 서양 서적을 하사 받아 중국으로 가져왔다(白日昇神父, 위의 책, p. 16.; 줄리오 알레니(천기철 옮김), 직방외기, 2005 일조각, p. 26 각주 33.). 이리하여 1670에 Ludovico Buglio 利類思 신부는 중국인 사제가 중문으로 미사집전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彌撒經典, 司鐸典課, 聖事禮典, 司鐸日課, 超性學要, 등을 중국학자의 도움을 받아 중문으로 번역하여 출판하였으나, 아깝게도 교황청의 비준을 얻지 못해 사용되지 않았다.(서양자, 청나라의 선교사들, 2010 도서출판 순교의맥, p. 310)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