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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풍경소리

  • 이번주 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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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번주 풍경소리


기우제라도 올리며 태종우라도 기다려지는 이 가뭄에, 다시 들어보는 풍경소리!

기우제라도 올리며, 태종우라도 기다려지는 이 가뭄에, 다시 들어보는 풍경소리! 太宗雨를 기다리던 백성들의 심정과 京釜大運河 건설 목적을 水資源 확보,관리로 방향 조정한 것,,,,!           


  가뭄이 심상치 않습니다. 일년 내내 큰 비가 오지 않는 마른 장마가 이런 해는 근년에 와서 처음입니다. 차제에 지난 2008년 1월 12일, 당시 경부대운하 건설 계획을 가지고, 정치권과 언론에서 매일 갑론을박하는 고성이 대단하였을 때, 천진암 홈페이지에 썼던 필자의 소견과,  2008년 2년 29일, 수원교구 사제들만이 들어가서 볼 수 있는, [교구 사제 게시판에],써서 올렸던 글을 아래 다시 덧붙여 올립니다.

     그 당시의 논거들을 보면, 한동안 언론상의 보도 주제가," 경부대운하 건설"에 관한 논쟁이었는데, 필자의 느낌은 운하 건설 자체보다도, 새 정부의 정치적 업적에 관한 시비와 논쟁으로 비쳤었읍니다. 그래서 필자는 경부대운하 건설은 교통이나 물류운반 수단이나 내륙 지방의 관광지 개발, 등을 주요 목적으로 삼지 말고, 수자원 확보 관리와 우기 수해예방 위주로의 방향 설정 재조정을 강조하였었읍니다. 무슨 일이든지 새로이 추진하는 일이거나 없던 것을 만드는 일이면, 우선 반대부터 하고 보자는 목소리가 커서, 반대 요소를 축소하면서 그나마 4 대강 정비의 국가적이며 역사적인 治水大工事는 서서히 목표와 명칭을 수자원 확보 관리와 우기 수해예방으로 돌려가면서, 오늘의 현실에 이르렀으니, 이나마도 완성한 것이 다행이며 옳았다고 지금도 같은 생각입니다. 특히, 지금 같은 가뭄에는 태종우(太宗雨)라도 기리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 註. 형제간에까지 많은 피를 흘리고 집권한 이방원이 태종(이방원)이 되어 집권하는 동안 하도 날이 가물고 비가 내리지 않아, 허구한날 곳곳에서 기우제 차리기도 진저리가 날 지경이었다가, 죽을 병이 들어 임종을 예견하던 태종이, "내가 너무 많은 피를 흘려, 하늘이 노하여 비를 내리지 않아, 해마다 모심기 철에 가뭄이 지속되니, 내가 죽으면 저승에 가서 반드시 비를 내리게 하여,백성들이 모를 심게 하리라" 하였는데, 공교롭게도, 태종이 죽던 날(1418년 음력 5월 10일) 억수같이 비가 내리자, 백성들은 이 때(음력 5월 10일 전후) 내리는 비를, 태종이 승천하여 내리는 비라고 믿고, "태종우"라고 불렀다.) 

 우리가 대신학생 때, 매년 한 두차례 기숙생 전원이 소풍을 가게 되면, 기숙사 재정 담당 신부님(그 당시에는 재정담당 신부님을, [당가신부님]이라고 불렀다.)이 단체 소풍비를 좀 푸짐하게 주는 관례가 있었는데, 신학교 기숙사의 재정이 하도 어려워서, 당가신부님은 기숙생들의 단체 소풍가는 날이 되도록 없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어서, 아침 하늘에 구름만 몇 점 끼어도, "비가 올텐데 소풍은 취소다"하였다. 그래도 기숙생들은 비를 맞더라도, 또 소풍비를 못 타오더라도, 용감히(?) 고집을 부리며 기숙생들은 소풍을 가곤하였다. 그런데 소풍날만 정해지면 빗방울이 시작되므로, "날씨 좋은 날 소풍 한번 가볼 수 없나?!" 하면, 대꾸하는 말꾼들이,"우리 당가 신부님이 맘뽀를 고쳐야만 소풍날 비가 안 올거라네!"하며 깔깔거렸다.
 요새 가뭄이 예사롭지가 않다. 누군가가 맘뽀를 고쳐야만 모심기 철에 비가 억수같이 내릴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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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 초 젊은 신부로서 한 때 농촌사회 지도자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일하던 시절, 시골의 냇갈과 물또랑, 저수지에 관한 토론이 종종 있었는데, 참석자들은 흔히, 냇갈과 또랑과 호수와 장마 수해의 규모에 대해서만 주로 말할 뿐, []자체에 대하여는 별로 중요시하지 않고 있었읍니다. 한마디로 [물 그릇]만 가지고 말할 뿐, [물 자체]에 대하여는  말하는 이가 별로 없었읍니다.  
 
  식수대란이나 식량대란은 염두에 두는 이가 적었읍니다. 돈을 물쓰듯 한다는 말처럼, 우리나라는 물 걱정을 덜 하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거의 모든 시골에서도 식수 뿐 아니라, 세탁수, 수세식 화장실, 등 생활 오수와 각종 공장 용수, 등의 수량이 엄청나기 때문에, 물부족이 심각해지는 나라가 되고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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京釜大運河 건설의 第一目的은 水資源 確保 管理라야 한다 ! <천진암 2008-01-12 >
 
최근 정치적으로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京釜大運河 건설의 第一目的은 水資源 確保 管理에 最于先을 두어야 한다. 통행수단과 관광지 개발은 2차적인 부수적 사항이다.
 
京釜大運河 건설의 第一目的 설정의 심층검토가 필요하게 보인다. 경부 대운하 건설의 주요 목적을 물류운반의 통행용 水路 건설이나, 지역발전을 도모하는 觀光資源 개발에만 너무 치우쳐 설명되는 것같은 인상을 받는다.
 
(1) 그러나 水資源 확보와 관리가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食水大亂과 食糧大亂 및 食糧武器化가 이미 시작되었다. 앞으로는 더욱 심화활 것이다. 특히 가뭄 때의 食水와 用水를 미리 확보하고 관리하며, 홍수때 水害豫防 위한 조절 기능을 하도록 토목 설계를 신중히 해야 한다.
 
징기스칸은 유롭 아시아 정복 때 騎馬軍團 활용 爲主였는데도, 가는 곳마다 도로 건설에 게을리하지 않았고, 로마 대제국은 道路뿐 아니라 食水와 생활 用水를 위하여 水路 건설을, 首都 로마 주변뿐 아니라, 점령지 변방, 심지어 이스파니아의 세고비아나 아빌라 지역까지, 넓은 벌판을 수십킬로미터씩 지상에 수십 미터 높이의 교각을 돌로 쌓고 空中으로 石造 排水路를 건설하였음을 아직도 볼 수 있으며, 현대에 와서는 미국도 대운하 건설로 用水 정책을 하고 있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케네디인지 확실치 않으나, 근대에 와서 미국 어느 대통령의 취임사 중에,“장래의 강대국이란 물을 많이 가지고 있고, 核을 많이 가진 나라”라고 하였는데, 핵발전소를 비롯하여 에너지 확보를 위해 油田국가마다 강대국들이 무기를 들고 모여드는 것을 막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으니, 중동 대부분의 産油國들이 수자원을 갖지 못한 것이 유전을 빼앗기는 弱小國化의 요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물이 없으면 기름이 있어도 힘이 없다. 미국의 방대한 댐과 특히 배수로용 대운하 건설의 예는 여기서 생략하기로 한다.
 
토끼 등처럼 남북으로 국토의 백두대간에서 동서로 흘리고 있는 하늘이 해마다 내려주는 수자원을 우리는 모두 동해와 서해로 보내고 있다. 중동에서 생수 값이 원유 값보다 더 비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경부대운하 건설은 수자원 확보 관리를 제1의 최우선 목적으로 설정해야 한다. 국가백년대계의 민족발전을 위한 자원확보다.
 
(2) 또한 교통수단이나 관광지 개발보다 해마다 연례행사인 수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홍수조절용으로가 둘째 목적이 되어야 한다. 국민의 생존보다 더 중요한 사항은 없다. 한강의 경우,여의도와 난지도, 미사리, 석천호수 지역, 등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건물들을 세워 홍수 때 한강의 수로를 막고 있는 것은 잘못된 近視眼적 계획이었다.
 
예를 들어 미사리는 홍수 때 큰 물이 서울로 흘러 들이닥치기 전에, 모여서 쉬는 빈 그릇으로, 그 동안 서울을 채운 물이 먼저 빠져서 나갈 수 있었고, 여의도와 난지도역시, 서울 물이 서해로 쉽게 빠지도록 하는 한강 하류 流域地帶로 오히려 더 넓혔어야 했다. 경부대운하 건설 토목 설계는 남한강과 북한강의 합류지점인 북쪽의 兩水里 지역과, 경안천과 양평 漢江浦가 합류하는 지역인 두물머리, 즉 二水里 지역에서 雨期의 한강홍수 조절이 가능하게 해야 할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가 지금 이 싯점에서 경부운하 건설 사업 착수가 최우선의 급선무냐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경부선 고속도로 건설 때, 당시 김영삼씨, 김대중 씨, 등을 비롯한 야당에서는 강렬하게 반대하며, 매우 비판적이었으나, 지금 되돌아보면, 그것은 국가 발전을 앞당기는 기초사업이었다. 경부고속도로가 땅에 누어 있는 것이니 다행이지, 공중에 서서 있는 구조물이었다면 벌써 쓰러졌을 거라는 혹평까지도 하였던 것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청중들은 그 말솜씨에 경탄하며 적극 경부고속도로 건설 반대편에 지지를 표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경제발전이 국가 존립의 유일한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국민의 오락이나 향락과 국민의 행복은 다른 것이다. 한마디로 쾌락과 행복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최우선 과업을 논한다고 할 때, 현재 민주화니, 조국통일이니, 평화니, 하는 허울 뿐인 명분, 즉 이름과 핑게로 스며들어온, 백여년 전의 레닌,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 등의 無神論 共産-社會主義와 非倫理的 不合理主義, 反理性主義, 즉, 自由와 正義와 眞實을 거부하는 人間自我不定의 인류파괴 사고방식을 일부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에게서 청소하는 정신교육사업이 최우선이다. 비평과 반대와 방해를 일삼는 정신자세는 정지와 퇴보와 낙후와 파괴와 자멸을 초래하여 가속화할 뿐이다.
 
대륙과 해양이 연접된 우리나라에 해마다 하늘이 내려주시는 풍부한 수자원 식수와 용수 확보와 관리를 잘 하면 우리는 [전천후(全天候) 대한민국]이 될 것이고, 또, 꼭 되어야 한다. 해마다 치르는 장마철의 홍수로 인한 수해가 연례행사처럼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데, 조선시대와 해방 후에도 인명피해가 심하였으나,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이 3명의 대통령 통치시기에 조성한 전국의 많은 저수지들, 수도권의 한강 상류만해도 팔당댐, 청평댐, 춘천댐, 소양강댐, 화천댐, 충주댐, 등,,,.그 治水업적으로 인하여 지금 이만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환경 파괴를 예방하고, 자연환경을 보전하려는 노력을 반대할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요새처럼 그 목소리가 크고 높았다며, 한강 상류의 저 많은 댐 건설이 순조롭게 가능하였을까?! 治水는 1차 산업의 기초 자원 확보로서, 治國牧民의 최우선이다. 남한의 이 治水와 治山을 미숙한 북한사회는 교훈으로, 교과서로 삼아야 한다.   
Msgr. B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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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08-01-12 (09:49)  
 
    *요새같으면 환경, 환경, 하는 고함소리에, 저러한 댐들을 막을 수 있었을지!? 환경파괴와 환경개선은 전혀 다른 것인데 ! 특히, 박정희 대통령 때 입산금지, 산림녹화 정책으로, 이만한 푸른 강산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수해와 산사태를 예방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서서히 또 여기저기서 북한의 민둥산을 본받으려는지, 큰 산의 급경사 지역까지도, 그동안 애국자들의 기관인, 산림청에서 조림을 도와, 산사태를 막고, 가뭄에 水源을 이루게 한, 우거진 숲의 기둥감들도 수백주씩 不法으로 벌목하는 無法 행위를 수수방관하며, 관리직무 유기를 업적이라도 되는 양, 북한의 민둥산처럼 만들어 가고 있는 담당자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산이 헐벗으면, 백성들이 추하게 마련이고, 굶주리며 허기지게 된다는 것은 오늘날 북한의 산림이 말해주고 있다. 만시지탄이 있지만, 북한도 이제는 식목과 조림에도 관심을 기울인다니, 다행이 아닌가? * 
 
<아래 논고는, 수원교구 사제들만이 들어가서 볼 수 있는, [교구 사제 게시판에], 2008년 2월 29일자로 올렸던 것인데, 대동소이하지만, 약간 다른 내용들이 있어서 참고삼아 여기에 합쳐 올립니다.>  
 
작성일 2008-02-29 오전 11:02:00 /작성자 변기영 
 
제목 경부운하(京釜運河) 건설 찬반(贊反)에 붙이는 글.
 
京釜運河 건설 贊反에 붙이는 글.- 물류운송과 관광지 개발, 등 경제발전을 목적으로 경부운하를 건설하겠다는 측과, 경제성 미흡, 경제성 不在, 환경파괴 위험, 등으로 이를 못하게 해야한다는 측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양쪽의 논리에 모두 一理가 없지 않다. 정치계의 정책 차원을 넘어서 사회 문제로, 또 종교계에서도 목소리를 높혀가고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의 기록에서는 사실 토막난 경부운하가 이미 삼국시대에 벌써 사용하였던 것으로, 낙동강 상류에서 남한강 상류로, 북한강과 임진강, 예성강, 대동강, 청천강, 압록강, 등 水路를 운하로 이용하면서, 중간 중간은 陸路를 거쳤으니, 특히 150여리씩 되던 태백산맥을 넘을 때는, 오늘의 히말라야 차마고도를 야크 등에 짐을 싣고 가는 격이었다. 사실 지금의 추풍령, 죽령, 대관령, 등, 고갯길은 삼국시대부터 우리 선조들이 낸 길이었다.
 
배나 뗏목에 짐을 싣고 下流로 내려가기는 쉽지만, 上流로 끌어 올리기는 어려워서, 바람과 돛에만 의존할 수가 없어, 짐 실은 배에 밧줄을 매어 수십명씩 힘센 목도꾼들이 江 가에서나 개울가에서 상류로 끌어올렸으며, 배가 개울이나 江의 땅에 닿아 걸리지 않게 장대로 밀어서, 뭍에서 배를 떼어 물 깊은 데로 밀어 넣는 일꾼들이 있었다.
 
특히 한강의 경우, 인천과 강화도 등지에서 한강을 거슬러 西湖(서강대 앞 강), 마포로, 東湖(동호대교 지역), 분원 마재 앞강(소내 分院 지역), 감호(鑑湖) 즉, 楊根 葛山으로, 이천, 여주, 등지로 짐실은 배를 끌어올리는 목도꾼들은 담당구역을 놓고 조합들끼리의 세력 다툼이 대단하였다.
 
영국과 아일랜드, 독일, 등 유롭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부족한 水路를 확장하느라 운하를 건설하여 쓰기도 하였다. 이제 국도와 고속도로, 지방도가 많이 발달한 지금에는 인구와 물량과 차량이 또 너무 증가하여 문제가 되는 것도 현실이다.
 
경제성이나 환경파괴 문제만 주로 거론하고 있으나, 洪水 때, 즉 雨期와 혹심한 가뭄의 渴水期 때 水資源 확보, 관리, 조절, 등이 훨씬 더 감안되어야 할 것이다. 더욱이 食水大亂이 날로 심각해지는 이 때, 태백산맥 東西로 治水 조절은 환경파괴와 환경파괴 예방, 혹은 환경보전과 환경개선을 놓고 저울질할 필요가 있다. 다만, 경부운하 건설이 지금 이 시점에서 다른 그 어떤 사업보다도 최우선적인 급선무이냐 하는 것은 별도문제다.
 
기마군대를 이끌던 징기스칸은 점령지마다 도로 개설에 주력하였고, 로마 대제국 군대는 점령지마다 道路 개설뿐아니라 水路 건설에도 주력하였으니, 지금 로마 시 외곽 뿐 아니라, 변방 지역인 세고비아나 아빌라, 그라나다에까지도 현재 돌다리를 수십미터씩 쌓아서 수km씩 空中 排水路를 건설한 유적을 볼 수 있다.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장래 강대국이란 물을 많이 가지고 있는 나라, 기름과 핵 등 에너지를 많이 가진 나라”로 역설하여, 캘리포니아, 텍사스, 등지에 미국은 광대한 배수로 운하를 건설하였다.
 
기름이 많이 있어도 물이 없으면, 있는 기름도 못 쓰고 빼앗긴다는 말이 있듯이, 물은 사회 발전의 제1차 기초 생존 자원이다. 물길을 만들어 운송로로 사용하기 위해서보다는, 수자원 확보와 관리를 위해서 생각해보고 싶다. 물 1리터가 원유 1리터보다 훨씬 비싸다는 중동의 수자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기존 질서를 파괴하거나 개선할 때는 대개가 변화를 싫어하는 기존의 기득권 보수주의자들이 반대하게 마련인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오히려 진보주의 편에서 더 반대하는 것 같다. 새로운 프로젝트는 반대가 있게 마련이다. 경부선 고속도로를 건설할 당시 김대중씨 등 야당에서는 강력 반대하였었고, 한국 기업이 중동에 최초로 진출할 때, 정부 보증 문제로 당시 국무회의와 집권 공화당에서도 만장일치 극력 반대하였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교회도 인천대신학교 설립 때, 많은 사제들이 극력 반대하였고, 우리 교구도 왕림 대신학교 설립과 조원동 주교좌 성당 건립 때, 절대다수의 사제들이 강력 반대하였었다. 지금 되돌아보며 잘한 반대로 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식량대란(食糧大亂)과 식수대란(食水大亂)을 예고하며, 우리 識者들은 이미 수십년 전부터 남북이 다 같이 국가 1차산업(농업, 목축, 등) 육성과 수자원 확보(貯水池, 등)를 강조하여 왔다. 팔당 댐, 춘천 댐, 의암 댐, 화천 댐, 충주 댐, 소양강 댐, 등의 건설이 아니었다면, 매년 홍수로 엄청난 인명피해가 불가피할 것이다. 조선 왕조실록을 보면 홍수 때 인명피해가 수만명씩에 이르기도 했다. 마치 지난 해 홍수 때 북한에서 1만 6천여명의 인명피해가 있었다고 보도된 바 있다.
 
전국의 저 많은 댐 건설로 수몰지의 환경파괴도 없지 않았으나, 환경개선으로 국민 생존과 산업 발전도 적지 않았다. 동강 댐 건설과 새만금 농경지화 건설로 환경파괴면도 무시해서는 안되지만, 환경조건 개선으로 얻는 것도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식량자립 위해 해안선 지대의 농경지화는 북한이 남한보다 10여년 앞서 시행한 정책으로 알고 있다. 저 많은 저수지 건설은 이 시대 한민족의 실로 위대한 업적이 아닐 수 없으나, 전국의 저 많은 저수지와 저류지 제방 건설 공사가 지금같으면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 Msgr.Byon  -
 
* 심산궁곡에서 또랑치고 가재나 잡는 늙은 신부의 푸념같은 소리도 좀 귀담아들었으면 좋으련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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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頭山 聖地 순례 화보와 북한 민둥산의 山林綠化 !- 
 
"10월이라 상달(上月)이니, 上帝님(天主님)께 祭祀하세" - 옛날 각설이 타령에서- 
 
      본란의  [이번주 풍경소리], [역사자료실], 등과  7개국어편의  [각국어 여러 난]에도, 교포들에게, [백두산 성지 순례화보]를 몇차례 내면서, 끝에 가서, 북한의 산림녹화를 언급하였다. 예상 외로 많이들 시청하였다.  오늘날 남한 山林綠化 사업의 대성공은 박정희 대통령의 강한 의지와 집념으로, 특히, 그의 소박하고 강인한 愛國心으로 가능하였다고 생각하며, 일부 국민들도,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인정할 것은 솔직히 인정해야 하며, 잘한 것은 본받고자 하는 정직한 겸손과 노력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Msgr. Byon 
 
白頭山 뻗어나려 半島 三千里, 無窮花 이 江山에 歷史 半萬年
代代로 이어오는 우리 三千萬, 壯하도다, 그 이름 大韓이라네
                   -우리가 어려서 부르던 노래다.- 
 
 천진암 성지 직원들, 8월의 白頭山과 天池 순례- 천문봉에서.-2014/8/20-
  
(단군 성조시대 배달겨레 先祖들의 체취가 배어 있는  韓民族의 聖山, 白頭山과 天池를, 작년 여름(2014. 8. 20.) 생전 처음 순례하면서, 한만국경, 도문 변경까지 들려서 두만강 건너 북한 땅을 바라보니, 원시림이 있을 줄 알았던 모든 산이 민둥산이다. 마음이 아프다! 마치, 휴전선의 임진강과 한탄강 건너 북한 쪽의 산들을 보는 것 같다. 산들이 저렇게 헐벗었으면, 주민들의 생활은 불을 보듯 뻔하다. ! 산이 헐벗으면, 장마철 산사태와 토사로 강과 하천이 메꿔지면서, 농경지와 마을의 수해가 극심할텐데! 정말 걱정스럽다! 그래서 돌아온 후, 우리 홈페이지에 알렸다. 국민들이 북한의 산들도 남한처럼 푸르게 해야 하는 일에 관심을 갖도록 !(245번  2014-10-19  04:47, 459명이나 시청하였다.)
  
白頭山 뻗어나려 半島 三千里, 無窮花 이 江山에 歷史 半萬年
代代로 이어오는 우리 三千萬, 壯하도다, 그 이름 大韓이라네
                   -우리가 어려서 부르던 노래다.-  
 
 천진암 성지 직원들, 8월의 白頭山과 天池 순례- 천문봉에서.-2014/8/20-
 무성한 산림은 가물고 비 안오는 시기에 水源이 되며, 장마철의 산사태와 토사유출을 막아준다. 

북한과 중국 국경 도문시, 강건너 뒤로 보이는 북한지역 산들 !. 울창한 수목이 보이지 않는 산들이 임진강 건너 북쪽의 산들과 같다. 산에 수목이 빈약하면 장마철 산사태가 불가피하다. 이상복 원장이 북녘 땅에 나무심기 운동을 펴서, 묘목 밭도 개설해 주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남북이 북한의 임야 조성에 정책적 힘을 기울여야!!! 산림이 헐벗고 황폐하면, 백성들이 헐벗고 주리며 남루해진다. 
 
열 그루의 나무를 심는 것도 필요하지만, 심은 나무 한 그루의 묘목을 잘 가꾸는 것은 더 중요하다는 것인데, 열 그루의 나무를 심기도 어려운데다가 백 그루 천 그루의 나무를 베어서 땔감으로 불살라버리면 어떻게 하랴? 그러나, 추운 겨울 배고프고 얼어서 죽지 못해 산에 나무를 베어다가 아궁이에 불을 때야 하는 그 사정은 오죽하랴? 마음이 아프다!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한다는 말처럼, 남한 동포들도  지난 1945년 해방 후와 1951년 1.4,후퇴 이후, 지금의 북한보다 훨씬 더 산의 나무를 베어 불을 때며 살았다. 그나마 구멍탄을 생산하며 산의 나무를 키웠다. 이제, 북한의 민둥산들을 울창한 숲으로 덮도록, 북한의 산림녹화에 남한 정부와 남한 국민들은 힘을 보태어, 삼천리 푸른 강산을 만들도록 관심과 성의를 다해야 하겠다. 이것은 정권차원을 넘어서  적어도 향후 반세기 이상 힘써야 할 것이다. 북한의 산림녹화는 북한의 힘만으로는 어렵게 생각된다. - 
 Msgr. Byon 

* 팔당댐 건설로 서울상류 수속과 수량을 조절하여, 
장마철 서울에 연례행사였던 수해가 줄어들고, 한강 범람의 위험이 사라졌다.*  

 - 위대한 정치가들과 유능한 행정관들, 훌륭한 공무원들의 공헌을 되새기며,,,! -
 
한국천주교회 발상지 천진암 성지는 경기도 광주 산맥의 주봉이 되는 앵자산의 서북쪽 광주군의 퇴촌면 지역이다. 산세가 수려한 명산이라 광주 8경 중의 2경이지만, 산악지대로 농경지가 매우 적고, 주로 산 사태의 토사가 많아 토질이 비옥하지 않으며, 산업시설도 없어서, 퇴촌면, 특히 광주산맥 주봉이 되는 앵자산, 무갑산, 관산, 등 심산궁곡의 관음리 우산리 무갑리 지역민들은 농경지도 소득도 충분치 않아 어려움이 많아서, 산 비탈에는 지금도 火田하던 흔적들이 적지 않다. 급경사면의 경작지화를 위한 화전 밭은 장마철 산사태나 토사의 원인이 되어, 중앙정부의 산림청에서는 조림을 서둘러서, 아시바 감으로 낙엽송 묘목을 심게 하였다. 그런데 곤지암에서 퇴촌, 분원에 이르는 경안천과, 양평에 이르는 한강에는 교량이 없어서, 퇴촌면과 남종면은 국도에서 고립되어 불편이 극심하였다.
 
특히 주변 도로가 없어서, 분원, 두미 나루터와 마재, 등에 소금배가 운용되던 시대에, 1961년 5.16 군사 혁명 정부는 서울에 전기가 부족하여, 수력발전과 수도 서울의 수해 예방을 겸한 팔당 댐 건설 공사를 추진하였고, 공사용 트럭 통행을 위해, 임시 도로를 우선 번천에서 두미까지 일방통행로를 개설하여, 경안천 서안, 도마치, 이성리, 두미 나루터, 아랫 두미 강가에까지 마차 통행이 좀 수월하게 되었다.
 

팔당댐 건설 기공식(1966년 착공~1973년 완공)-金光彦 촬영, 사진 제공.- 서울의 전력 수급과 우기 서울의 홍수 피해 예방을 주목적으로 건설된 팔당수력발전소 건설 공사는 국가적으로, 특히 수도권의 한강 수계 안전과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국토건설사업이었으나, 한국천주교회 발상지 천진암 성지의 개척과, 특히, 한민족100년계획 천진암대성당 건립을 위한 기반시설-진출입로 확장 개설, 등에도 미리 초석이 되는 하느님 안배의 손길이었다. 앞으로 설명할, 천진암대성당 건립을 위하여, 하늘이 미리 섭리하신 국토건설사업이었다고 확신한다.-Msgr. Byon


팔당댐 건설 기공식 중 박정희 대통령의 기공식 기념식사 (1966년 착공~1973년 완공)-金光彦 촬영


팔당댐 건설 기공식(1966년 착공~1973년 완공)-金光彦 촬영


팔당댐 건설(1966년 착공~1973년 완공)-金光彦 촬영


팔당댐 건설(1966년 착공~1973년 완공)-金光彦 촬영


팔당댐 건설(1966년 착공~1973년 완공) 위 사진 중, <한국전력주식회사 팔당댐 수력발전소 건설공사> 기공식 중, 박정희 대통령 기공식 기념식사-물길이 치솟는 지점은 지금의 팔당 댐 남쪽 시작 지점이고, 물길 뒤로 약간 오른 쪽은 아랫 두미 마을이다. 30여 면의 사진들은 자료실에서 추후 볼 수 있음.
<한국전력주식회사(한전)의 팔당댐 수력발전소 공사 기공식 당시(1966년 6월)부터, 팔당건설사무소 현장에 근무하던 직원, 젊은 날의 金光彦 촬영 제공>
 
우리나라가 전력부족과, 특히 매년 연례행사처럼 겪는, 장마철 많은 인명피해를 내던 서울 한강의 물난리 수해 방지를 위하여, 1964년(?) 초여름 당시 박정희 대통령 일행이 팔당댐 건설 후보지 현장 점검(?)을 겸하여, 한강 서울 상류의 남한강, 북한강, 경안천이 합류하는 남종면 분원 주변과 퇴촌면 강변을 둘러보면서, 퇴촌면의 도마리 냇갈 가에서 시골 농부들이 천렵(川獵?)하듯, 아주 소박하게 민물 매운탕으로 점심을 하였는데, 개울 건너 광동리를 바라보며, 농민들이 경안천에 임시로 만들어 건너다니던, 모래 가마니와 기둥감 두줄을 한데 묶은 외나무 겹다리를 보고, “장마철에는 저 다리가 떠내려갈텐데, 그러면 저 건너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통행하느냐?”고 박대통령이 묻자, 동석하였던 도지사(남봉진?이흥배?)가, “퇴촌과 남종(분원) 2개 면민 모두가 완전히 고립되어, 여러날 동안 물이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다리 놓기를 반복하면서 건너다닙니다.”하고 보고하였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시골 출신의 박정희 대통령은, “저런 ! 아주 시멘트로 좀 튼튼히 큰 다리를 하나 놓도록 해야지요 !, 그리고, 저 건너 초가집들은 매년 봄에 짚으로 영을 엮어서 지붕을 새로 해야 할텐데, 전국 농민들이 초가집 지붕을 한번 하면 좀 여러해씩 쓰도록 해봅시다!”. 하며 지시하였는데, 평소 좀 과묵한 박정희 대통령의 한마디에, 바로 퇴촌을 건너가는 첫 다리가 처음 착공되었고, 수행원들의 추진으로 상공부에서는 초가집 지붕 개량용 자재로 쓰레트 생산 개발에 착수하여, 처음 제작된 쓰레트로 전국에서 퇴촌면 광동리 마을이 제일 먼저 쓰레트 지붕개량 시범부락이 되었다고, 당시 관계인사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천진암 터가 있는 우산 2리 절막 마을은 당시 심산궁곡 종점이어서, 퇴촌 면사무소에서 천진암 터가 있는 우산리 절막까지 12 Km를 가려면 지그재그 식으로 흐르는 바위돌 무더기 우산천을 건너기 위해, 자주 신발을 벗어들고, 징검다리와 외나무 다리를 13번이나 건너야만 하는 산골이었다.
 
첨부파일1 : 20151113174675604.hwp
Writer : Msgr. Byon    Date : 2015-11-03 23:38   Hit. 1895
입력 : 2017.05.29 오후 11: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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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Msgr. Byon    Date : 2017-05-29 23:46   Hit. 2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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