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나라와 민족들 간의 무역충돌이나 영토분쟁, 전쟁예방 등 때로는 강대국들의 생트집이나 작전수단으로도 종종 상대국 기만 회담이나 강요된 합의도 없지 않았다. 지난 1,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개전(開戰)의 전주곡처럼 명분 쌓기 회담도 없지 않았다.
더구나 일당독재의 권력으로도 종교와 외교와 경제는 힘으로 되지 않으므로, 각종 회의와 합의 형식으로 국민 기만이나 상대국 무력화의 선전이 요란한 회담일수록 합의서는 일찍 破棄되어 휴짓조각이 되기도 하였다. 1970년대 초, 미국 키싱저 국무장관이 주도한 동남아 10년 전쟁 종전의 [파리 평화회담]이, 미소중영불 세계 5대 강국들 공동참여로 기대 속에 내놓은 [평화선언]은 3년도 안 가서 사이공 함락으로 휴짓조각이 됐다.
그래서 회담 내용에 현실을 도외시한 논리적 합리성이나 윤리적 정당성이 결여되면 강국들도 합의사항 이행을 소홀히 해 의도적으로 파기되고 만다. 약소국들도 당면한 어려움만을 우선 모면하려고 거짓말을 반복하며 명분 쌓기 회담의 합의사항 이행회피는 물론 끝내는 새로운 전쟁의 씨앗을 싹 틔우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논리가 없고 윤리도 없는 회의나 합의가 무의미하고 무효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어떤 문학가는 문학 이상의 정치회담 각론이 될 교훈을 담아 다음과 같은 우화(寓話)를 쓰기도 하였다(이솦 우화 참조).
굶은 사자가 어린양을 만나자 “네 이놈, 너는 작년에 내게 욕을 하였지?” 하자 어린양은 “저는 작년에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었는데요!”하고 답하였다. 말문이 막힌 사자는 생트집하려고 궁리 끝에 다른 핑계를 내놨다. “너는 지난달 내 굴 앞의 풀을 내 허락도 없이 뜯어 먹었지?” 어린양은 답하였다. “저는 태어난 지 겨우 2주일도 채 안 되어, 아직 이빨이 나지 않아 엄마 젖만 빨아먹고 살아요. 풀은 아직 뜯어 먹지 못하는데요!” 이에 사자는 억지로 ‘에헴!’ 큰기침을 하며 최후통첩을 하였다. “사실은 내가 지금 시장하여 너를 잡아먹어야 하겠다” 하며 불합리한 非論理와 부당한 非倫理의 포식자는 마침내 어린양을 잡아먹었다.
양심과 理性을 무시한 회의나 진실과 정의를 포기한 합의서의 法理를 떠난 비핵화나 [평화통일] 거론은 그 자체가 무의미하고 무효이므로 전쟁 방지력은 고사하고 오늘의 경우 核大戰으로 전쟁확대 위험 제거력도 없으며 인류를 기만하는 선전 깃발 아래 숨어서 아침이 다 가도록 늦잠에서 덜 깬 잠꾸러기의 잠꼬대 같은 헛소리에 불과할 수도 있다.
1945년 세계대전 후 모스크바 삼상회의가 조선 신탁통치 연장을 거론하자 온 겨레가 찬반양론으로 분열하여 갈등과 폭력까지 불사할 때 누군가가 서울 남대문과 동대문에 써 붙였다는 요사이 표현의 ‘大字報’ 내용은 오늘도 우리에게 큰 경각심을 갖게 한다.
“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한테 속지 말고, 日本은 일어난다. 조선아 조심해라!” 이 대자보 필자가 중국 거론을 피한 것은 당시 중국 장개석 국민당 정부가 모택동 공산당의 대장정 게릴라 내전에서 헤어나지 못하여 대만으로 천도 중일뿐더러(?) 옛 明, 淸, 제국처럼 조선에 기웃거릴 여유도 없었겠지만 항일 공동투쟁의 대한독립군 지원국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조선도 500여년 간 기대던 明과 淸이 사라져서 大國없는 孤兒 小國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바깥 “中原의 모랫바람 突風”에 눈도 뜨기 힘든 터에 집안의 野壇法席에 앉은 소경들은 狂風이 휩쓸고 있으니 洪水로 범람한 국내외 정치회담의 暴雨 속에서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지듯 무죄한 약소민족들만이 집단 溺死의 위기를 피할 수가 없게 될까 걱정이다. 思想家 부재사회의 이 광란(狂亂)의 시국에 오늘도 모두가 하느님께 眞率한 기도의 노래를 부르자. “하느님이 保佑하사 우리나라 만세!”, “大韓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변기영 천주교 몬시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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