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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명 라명견 미카엘 루찌에리 신부(1542~1607)는, 중국명, 이마두, 마테오 리치 신부(1552~1610)보다 10세 위의 선배로서, 같은 이태리 출신의 예수회 신부다. 마테오 리치 신부에게 중국선교를 강권하여, 중국선교에 끌어들인 선각자다. 이미 인도에서 중국어를 약간 익히고 마카오에 도착한(1580) 후, 미셸 루지에리 신부의 뒤를 따라 마침내 3년 늦게나마 선교학의 대 천재 성현, 마테오 리치 신부도 드디어 마카오에 올 수 있었다(1583).
1578년 사제품을 받고 인도에 파견되었던 미셸 루찌에리 신부는 이듬해, 즉, 1579년에 마카오로 인사발령을 받아, 마카오와 내륙의 광주(廣州),및 조경(肇慶)을 왕래하면서, 조경에 머무는 동안 1584년 말에 西天竺國 天主實錄의 초고를 마친 후, 우선 원고 30여 부를 필사시켜, 현지 중국인 식자들에게 배부하였는데, 의외로 반응이 아주 좋았다. 그래서, 바로 마카오 島主 王泮의 認許를 받아, 西天竺國 天主聖敎實錄으로 개칭하여, 우선 1,200부를 목각 인쇄하였는데 이역시 배부하자마자 부족하여, 이어서 즉시 3,000부를 다시 더 증보 목각 인쇄하여 북경과 동남아 각 나라의 사절단에게도 배부하여 보급하였다. <간추린 우리나라 천주교회사 창립사 제2장 참조, 2004년 10월 14일 발행, 천진암 한국천주교회창립사연구원 발행>
그런데 위의 미셰일 루찌에리 신부가 지은 西天竺國 天主聖敎實錄이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것은 1592년. 임진왜란 때, 이정형을 따라, 明나라에 지원군을 요청하러 갔던 수행원 芝峯 李수光이 朝鮮 國內로 持入한 것이, 西天竺國 天主實錄이다. 天學實義나, 天主實義 명칭 사용 발행본들은 1602년 이후로서, 후대인들은 그 전의 여러 개정판들도 모두 대부분 天主實義 로 알고 대동소이한 동일한 내용이라서 흔히 그렇게 불렀다. 그런데 지금까지 책 이름만 거론하던 우리들과 달리, 소순태 박사와 김학렬 신부가, 그 내용의 용어 비교 대조 연구로 우리나라 창립사의 문헌에 이용된 것을 찾아낸 것은 대단히 칭찬해야 할 연구결과다. 특히, 이벽성조의, [聖敎要旨] 라는 주제어 자체가 [聖敎實錄]에서 따왔음을 이제 어렵지 않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聖敎 라는 말을 지금 읽고 말하기는 쉬어도, 처음으로 이 단어를 창안해 내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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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1584년부터 1602년까지, 약 20여 년간은 라명견 신부의 [천주실록] 혹은 [천주성교실록]이 판을 거듭하면서 전파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로마의 지성인들 중에는 (예 Giullio Dante 변호사, 및 예수회 모 장상 신부의 서문이 있는 기념문헌, 등에서도), 천주실의를 미셸 루지에리 신부의 최초 原作으로, 마테오 리치 신부가 보완한 것으로 말하고 있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라명견 신부는, '天主實錄'이나, '天主聖敎實錄'에서 보듯이, '實錄'(참된 글)이라는 표현을 썼으나, 20여년 후, 마테오 리치 신부는, 보완과 수정을 겸하여 판을 거듭하면서, '天學實義' 나, '天主實義'에서 보듯이, '實錄'이라는 단어 대신 '實義'(올바른 의미)라는 단어로 대체하여 쓰기 시작하였다.
선교학에서 본다면 이는 용어사용의 1보 후퇴로 현장에서는 2보 전진의 효력을 내는 책략이라 할 수 있다. 또한, 漢字語의 意味와 用途에서, 예컨대, '朝鮮王朝實錄'에서도 볼 수 있듯이, '實錄' 이라는 말은, '참된 사실 기록'이란 뜻이고, '實義'라는 말은 '진실된 뜻', 즉, 그 의미를 밝힌다는 뜻이다. 그래서, 천주실록(天主實錄)이란 말은 '천주님에 관한 참된 사실 기록'이란 것이고, 천주실의(天主實義)나, 천학실의(天學實義)라는 말은, 천주님에 관해서나, 천주님을 배우는 학문, 즉, 천학의 참된 진실한 의미와 뜻을 밝힌다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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